
스바코-축제
계획되어있던 여름휴가가 무산되었다. 전날의 폭우와, 그 비에 젖은 모리탐정이 심한 감기에 걸린 탓이다. 예정이 취소되고 나서 코난은 할 일이 없었다. 여름방학 숙제는 이미 방학이 시작한 후 일주일 안으로 다 끝내버렸고, 밖으로 놀러가자고 생각하자니 날이 너무 더웠다. 다른 아이들은 오늘 박사님과 함께 계곡으로 캠핑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리 탐정을 간호하는 란은 해열제가 없다며 코난에게 심부름을 부탁했다. 거부권은 없는 모양이라 모자를 먼저 찾았다. 에어컨이 있던 집과는 달리 뜨거운 공기에 괜히 그늘부터 찾아 보드를 탔다. 걷는 것보다는 빠르게 다녀올 수 있었다.
해열제를 사고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그늘로 다녀도 뜨거운 공기가 몸에 배어서, 편의점으로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냉방에 표정이 풀려버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고르기 위해 들여다보고 있는 코난을 누군가가 안아 올렸다. 역시 코난군이네요. 내려놓으라는 말에도 스바루는 그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아이스크림 값을 내준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편의점을 나와서야 코난을 내려놓는 스바루는 다른 손에 쥔 보드와, 코난의 손에 들린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바꿨다. 나란히 걸어가는 것도 드문 일이었고, 어차피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까지는 보드를 탈 수도 없었다.
탐정 사무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스바루는 되돌아갔다. 사무실 앞까지 올 이유야 없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진 탓이다. 다른 아이들은 캠핑을 갔는데 코난이 왜 남아있는지에 대한 물음부터, 모리 탐정의 감기로 해열제를 사러 다녀와야 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문을 열고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며 들어가자 란은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오늘 열이 떨어진다고 해서 내일 어디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란은 이틀 후 금요일, 새벽부터 부활동의 합숙을 갔고, 2박 3일은 집에 없었다. 모리 탐정도 금요일부터 상가의 사람들과 함께 온천여행이 결정되어 있는 탓에 코난은 금요일부터 박사님과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아직 화요일이었지만, 결국 두 사람의 일정으로 이후에도 바다에 가는 것은 무리였다.
정오 즈음, 란은 죽을 만들어야 했다. 더운 날씨에 죽을 만들기 위해 계속 부엌에 서있었다. 코난은 그런 란을 옆에서 도왔다. 열 때문에 란까지 건강에 무리가 간다면 어린 자신의 몸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정작 두 사람의 점심은 더 이상 불 앞에 있기 싫은 탓에 1층의 포와로에서 샌드위치를 사왔다. 아무로도 코난이 바다에 간다고 들었기 때문에 의아해했지만, 모리 탐정의 감기 소식을 듣자 오렌지 주스도 챙겨주었다. 늦은 점심식사 후, 스바루는 코난에게 저녁에 가도 되는지 문자를 했다. 뭔가를 많이 만들었다는 말은 없어서 왜 찾아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란 누나에게 말해두겠다는 답장에 더 답이 오지는 않았다.
그 날 저녁, 약속을 했던 스바루가 찾아왔다. 늦은 저녁에 방문하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란이 좋아하는 디저트 카페의 로고가 찍힌 상자가 손에 보였다. 이제야 막 저녁을 먹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디저트의 유혹이었다. 란은 금방 차를 내왔고, 조각 케이크가 한 조각씩 접시에 놓였다. 딸기와 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에 란은 만족한 듯 보였다. 남은 케이크는 냉장고로 들어갔다. 코난은 자신 몫의 케이크에 포크를 대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아서 방문 이유가 더 알고 싶어질 뿐이었다.
란에게 커피를 받으며 스바루는 광고지를 내밀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열리는 여름 축제가 있다며 코난과 함께 가도 되는지 물었다. 방금 딸기를 입에 넣은 참이었던 코난은 놀라서 포크를 씹었고, 란은 코난이 괜찮다면 상관없다고 답했다. 축제는 오늘부터 시작으로, 내일 도착한다고 해도 어차피 1박 2일의 기간으로 늦어도 목요일 저녁에는 돌아올 수 있었다. 불꽃놀이도 한다고 하니 제법 기대된다는 말을 꺼내는 걸 봐서는 절대,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했다. 기회가 되었으니 다녀오라는 란의 권유에야 코난은 입안의 딸기를 삼키고 으응, 하고 간신히 대답했다. 아침에 데리러 오겠다는 스바루는 정작 자신의 몫인 커피와 케이크에는 입 한번 대지 않고 돌아갔다.
옷과 지갑,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겼다. 아침이 되니 모리 탐정은 좀 괜찮아진 모양이라, 그래도 무리하지 않게 하루를 더 쉬기로 하고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러갔다. 란은 소노코와 디저트 카페에 간다며 들떠있었다. 역까지는 데려다주겠다는 그녀에게 코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스바루의 차를 타고 이동하니까 굳이 이곳에서 만날 필요는 없었다. 코난이 쿠도 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일찍 출발해서 그만큼 일찍 바다를 볼 수도 있었다. 만나기로 한 아침 9시가 늦은 편은 아니었다.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 도시락과 주스를 두병 사고 스바루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차가 보인 건 약속시간에서 15분이 더 지난 시간이었지만 어물쩍 말을 넘기는 걸 보니 속이 좁아 보일까봐 지각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바다로 가는 길 내내 여유로웠다. 방학 시즌이라고 해도 평일인 탓에 아짃은 휴가인 사람들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이고, 차도 막히지 않고 도로는 거의 비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예약했다는 말은 이미 전부터 계획했다는 의미라 안전벨트를 풀던 코난은 잠깐 스바루를 보고 차에서 내렸다. 승강기를 타고 7층에 내렸다. 짐만 두고 바로 바다를 보러 가자는 스바루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화장실에서 선크림을 대충 바른 코난은 모자도 챙겨 나갔다. 선탠을 해도 나쁘지 않은 날이지만, 코난은 자신의 피부가 얼마나 약한지 실감했으니 그 선택지는 접어두는 편이 좋았다. 어린이 탐정단으로 캠핑으로 바다에 갔던 날이면, 항상 피부가 타서 갈색 피부가 되는 게 아니라, 피부가 빨갛게 익어버리는 정도에서 그친 탓이다. 모래사장에 들어가지 않고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코난에게 스바루는 옆으로 다가갔다. 바다에 오고 싶어 했던 눈치는 아니네요. 달리 대답이 없었다. 바다에 굳이 올 필요가 있던 건 아니었다.
“이제 수영하러 갈까요? 튜브를 빌려올 수 있을 거 같은데.”
“저 수영 안할 건데요?”
“네?”
“…네?”
왜 안하냐는 물음이다. 수영복을 안 가져왔다고 하면 근처에서 살 것 같고, 수영을 못한다고 하면 가르쳐 준다고 해서 결국은 바다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 수영을 하면 그만큼 지쳐서 저녁에 불꽃놀이를 못 볼 것 같다는 핑계에 어물쩍 넘어가 주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쉽다고는 해두었다. 낮의 시내는 크게 붐비지 않았다. 불꽃놀이 때문에 낮보다는 저녁이 더 중요해서, 아직은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점심식사는 호텔 안의 레스토랑이었다. 초밥이나 회를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스바루는 초밥이기는 했지만, 코난은 파스타였다. 축제는 저녁 시간을 맞춰 6시에 호텔에서 나가기로 하고, 객실에서 에어컨을 틀고 잠시 낮잠을 자두기로 했다. 말이 낮잠일 뿐, 침대에 누워서 그저 찬바람을 즐기면 되었다.
6시 반에야 나온 두 사람은 이미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축제까지 왔으니 저녁 식사는 볶음 국수로 결정되었다. 물론 다른 음식을 먹어도 상관없었다. 축제까지 와서 식당을 예약하기에는 축제를 즐기는 느낌이 아니라는 스바루의 의견이었다. 애초에 식당을 예약해도 입이 짧은 코난으로서는 반가운 일이고, 적당히 배를 채우기만 하면 뭐든 상관없기도 했다. 평소라면 더 먹어야 한다던가, 카레를 먹자거나 할 테니 선택이 다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적어도 배를 채우는 게 중요해서 볶음 국수고, 사실 크게 상관이 없었다면 사과 사탕 하나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스바루는 하늘색 솜사탕과 분홍색 솜사탕을 들고 있었다. 사과사탕이 다 팔린 것 같다며 코난에게 분홍색 솜사탕을 쥐어준다. 맛이 다르지는 않은데 괜히 분홍색을 준다. 어두운 주위에 색은 없고 형태만 대충 보일 뿐이었지만, 푹신한 솜사탕으로 코와 입을 묻었다. 입 주위에 솜사탕이 달라붙어 끈적거리고,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스바루는 불꽃놀이가 안보이겠다며 코난을 안아 올렸다. 괜찮다는 코난의 말에도 내려주지 않았다. 불꽃놀이가 곧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있었다. 모래사장에도 제법 사람이 많았다. 그나마 잘 보인다는 장소로 이동은 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나는 코난군을 좋아해요. 상당히 감정적인 의미로.”
8시 정각이 되자 첫 불꽃이 하늘로 순식간에 올라가 터졌다. 한 순간의 고백이었다. 다만 장난 같지는 않아보였다. 그 말을 들은 후 상당히 멍하게 있었다고 자각한 이유는 심장소리 탓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심장 소리가 너무 빨라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소리였다. 정말로 터진 소리일까 들으면 사실,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석여 들린 것이었다. 불꽃이 크게 터지는 그 소리에 맞춰 심장 소리가 쿵쿵, 하고 빨라졌다. 더워서, 사람들이 많아서. 이유는 뭐라도 가져다 붙일 수 있었다. 지금은 심장소리가 너무 클 뿐이었다. 사랑의 고백이라는 게 너무 쉽게 입 밖으로 나와서 곤란했다. 불꽃이 계속 터지고 있다. 사람들의 환호성도 계속 되고 있다. 뭔가 말하려는 듯 스바루는 코난의게 다가갔다. 주위가 시끄러운 탓에 코난은 대답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오늘따라 말이 없다며 벌써 지쳤는지 묻는다. 겨우 고개를 저었다.
호텔에 돌아와서 목욕부터 했다. 욕조에 한참 몸을 담그고 있다가, 먼저 자겠다며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런 고백을 들어놓고 쉽게 잠이 올까. 코난은 뒤척이다 결국 일어났다. 옆 침대에서는 스바루가 있지만, 자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답답해서 밤 산책이라도 할 겸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호텔로비의 직원도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새벽에 아무도 없을 것을 예상하고 모래사장과 파도가 맞물리는 곳에서 운동화를 벗어 손에 들고 걸었다. 파도가 천천히 모래에 스며드는 정도였고, 이미 운동화는 모래사장에서 모래가 가득 들어갔기에 일부러 한번은 벗어야 했다. 스바루가 본다면 조개껍질에 상처가 날 수도 있다고 걱정하겠지만, 차가운 바닷물이 발에 닿을 때마다 몸이 열기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가, 줄어들었다가를 반복한다. 한 시간을 바닷가에서 걷다가 젖은 흙만 떼어내고 운동화를 신었다. 모래가 다시 신발에 들어가면서 찝찝해졌다. 방으로 들어와서 손과 발부터 씻어냈다. 신발의 흙도 전부 털어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늦잠을 잘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체크아웃 시간은 적어도 정오까지라는 생각에 큰 걱정은 없었다.
예상대로 너무 늦게 일어나서, 코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였다. 코난을 깨운 스바루는 슬슬 나가야 한다며 가방을 건네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대충 세수를 한 코난은 스바루와 그렇게 객실에서 나갔다. 주차장에 가고, 차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고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 아직 졸린 코난에게 어제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하는 스바루는 언제 편의점에 다녀왔는지 코난에게 우유와 크림빵을 건네었다. 기념품을 못 샀다고 말을 돌린 코난은 스바루가 건네는 빵을 받으면서도 창 바깥만 보았다. 다음에 만날 때 답도 달라는 스바루는 느긋해보였다. 결국 네, 하고 답하며 빵만 삼켰다.
목요일 낮에 도착해서, 다행히 감기에서 벗어난 모리 탐정이 문을 열어주었다. 스바루에게 신세가 많았다며 감사 인사를 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기념품을 못 샀다는 말에도 란은 괜찮다고 했다. 고백의 답은 그냥 넘기거나, 아마 답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오래 기다리게 할 생각이었다. 거절을 하면 확실하지만, 코난은 그 날 이미 고백을 받아들였을 거라 생각했다.
끝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금요일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전화가 왔다. 박사님이 허리를 삐끗해서 아무래도 널 맡아주는 건 무리인데. 쿠도군, 당신 집에서 지내면 안 될까. 하이바라의 첫 마디가 그 말이었다. 그게 좀 문제가 있다는 말을 꺼내지를 못하고, 파스 붙이고 가만히 있으라는 짜증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올 때까지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다가 알겠다는 대답만 하고 끊은 전화였다. 다음에 만날 때 대답을 가지고 와달라고 했었던 스바루였다.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지. 대답은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은 복잡해지는데, 모리 탐정은 출발한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금방 내려가겠다고 답은 했지만, 정작 움직이지 못하고 얼굴만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