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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신-장마의 끝

지독한 장마였다. 그 날도 이런 날이었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몰아치는 빗소리에 내민 손끝이 천천히 잠겨든다. 손가락을 타고 고여든 빗물은 밤을 닮아 차갑고 또, 어두웠다. 제 마음 같았다. 이따금 느끼는, 사무치는 고독에 삼켜진 기분이다. 오직 홀로 남은 공간 속에서, 후루야 레이는 오늘도 빈 옆자리를 더듬어 본다. 쿠도 신이치. 그가 실종된 지, 정확히 5년이 된 밤이었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비밀을 아는 사람이 늘었다고 해도, 에도가와 코난이 쿠도 신이치란 사실은 철저한 극비였다. 그건 후루야 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실은 검은 조직에 잠입한 공안 경찰이며, 그를 믿고 있다 할지라도, 코난은 제 정체를 밝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안전한 법이다. 협조해줄지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도박을 하기에는, 소년은 지켜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위험한 사람. 후루야에 대한 소년의 솔직한 평가가 그랬다. 그는 잠시라도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잠깐 마음을 놓을라치면 단숨에 파고들어 원하는 정보만을 낚아챈다. 그의 눈은 남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흔적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의 혀는 상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단서를 발설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소년이 직접 말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쿠도, 신이치 군?”

 

 

후루야가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밀을 알게 된 후루야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소년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진땀을 빼며 꼼짝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알게 된 걸까. 제 정체를 알았다면, 하이바라가 조직이 쫓던 쉐리라는 것도 눈치챘을 터다. 소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상상하기도 싫은 가정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지? 시선이 계속 바닥을 헤맨다. 희게 질린 낯에 따뜻한 손이 닿은 건 그즈음이었다.

 

 

“걱정하지 마, 코난 군. 너를 위험하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

 

 

나한테 숨겼다는 건 조금 서운하지만. 상냥한 목소리가 소년을 다독였다. 덧붙였던 말도 책망하기보다는 투정에 가까운 어투라 소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분명 추궁하거나 조직에 쉐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볼을 쓸어내리는 손짓을 덧그리다 고개를 올려 그와 시선을 마주한다. 부드럽게 눈가를 휘며 웃는 얼굴은 숨기지 못할 애정이 흘렀다. 아. 소년은 작게 탄식을 뱉었다. 바짝 얼어있던 몸이 서서히 풀린다. 이제야 모든 것이 들어맞는다. 아무로 씨는, 혹시―. 차마 꺼내지 못할 말을 목 안으로 삼켰다. 위대한 변화의 서막이다.

 

 

 

후루야는 소년에게 협력하기를 원했다. 지난날들처럼 아리송한 실마리만 던져주는 것이 아닌, 소년이 원하고 궁금해하는 정보를 적정선에서 제공했다. 하이바라를 보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괴도 키드의 도움이 있었다는 간략한 설명을 듣고는 짧게 고개를 주억일 뿐이었다. 하이바라는 그를 쉽게 믿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는 NOC다. 조직의 심층부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공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살아있는 쉐리를 조직에 넘기는 건 그 공을 세울 기회다. 불안해하는 게 마땅하다. 설마 계속 이대로 둘 건 아니지? 날 선 하이바라의 물음에 소년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가 도와준다면 일이 한결 쉽겠지만 이미 위험한 사람이라고 지정한 바 있다. 지금은 도움이 되고 싶다 한다고 해도, 언제 태도가 돌변해 마음을 바꿀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법이라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두어야 했다. 하지만……,

 

 

“내 말 듣고 있어, 에도가와 군? 간단하게 결정할 게 아니라고.”

“……알아.”

 

 

…하지만, 그의 애정 어린 표정이 자꾸 저를 찔렀다. 왜, 나를? 저를 향한 애정이나, 연정을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편이 아니라 더욱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혹시 착각이 아니었을까, 싶어 주시하기도 했다. 결과는 늘 같았다.

 

 

 

후루야 레이는 에도가와 코난 아니, 쿠도 신이치를 애정하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구태여 숨기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알아주길 바란 듯 보이기도 했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대체, 무슨 이유로. 답을 알 수 없는, 비슷한 의문이 자꾸 고개를 드밀었다. 아파오는 머리에 살짝 미간을 좁히니, 딴 생각 중인 걸 득달같이 눈치챈 하이바라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뾰족한 눈매로 말을 잇는다.

 

 

 

“이건 중요한 문제야. 너는 물론 너를 아는 사람 모두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는. 그런 위험천만한 모험은 할 수 없어.”

“……아니, 해봐야겠어.”“제정신이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거 같아.”

 

 

하이바라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소년은 후루야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선택했다. 거짓말쟁이의 진심을 파헤치겠다는 목적과, 조직의 정보를 얻겠다는 목적 반이 섞인 결론이었다. 소년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변함없이 사랑을 노래했다. 계절이 바뀌고, 조직의 비밀이 하나둘 밝혀져도 한결같았다. 그럴수록 의구심은 깊어져만 갔다. 어째서 나를 그렇게 보는 거예요? 묻기에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명하게 눈에 보여도, 저 혼자 짐작하는 것보다 직접 두 귀로 듣는데 더한 각오가 필요한 탓이다. 탐탁지 않게 그들을 주시하던 하이바라가 묘한 표정으로 둘이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이네, 라는 말을 남기긴 했으니 아마 짐작대로긴 할 테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소년은 눈을 낮게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기억 속의 그는 언제나 다정했다. 보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단 한 번도 눈치를 주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단지, 눈이 마주치면 그 어느 때보다 해사하게 웃어줬다. 오직 소년 한정이었다. 커다란 손으로 쓰다듬어줄 적에는 가슴 속에 따뜻한 온기가 절로 번졌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걱정 섞인 염려를 들을 때는 왠지 모를 웃음이 났다……. 아. 소년은 깨달았다.

 

 

 

제 시선의 끝에는 항상 그가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속내를 낱낱이 파악하겠다는 의도가 어느새 변질되어 전혀 다른 마음으로 남았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스며든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한탄해도 답은 없었다. 혹시 알고 있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치 빠른 후루야는,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년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저도 자각하지 못하는 새, 티를 많이 냈던 것도 같다. 새삼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친다. 붉게 달아오른 뺨을 문지르던 소년은 곧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 돼. 지금 이 상태로 그를 만난다면 온몸으로 의식할 게 뻔했다. 그럼, 당분간은 만나지 않은 것이 좋을 테지. 제 연애에 관련해선 영 숙맥다운 생각이었다.

 

 

 

다짐은 제법 길게 지켜졌다. 소년의 전적인 의지는 아니었다. 조직과의 결전이 바로 코앞인 상황이었다. 후루야가 공안으로도, 조직원으로도 바쁜 날들을 보내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사정이 가장 컸다. 하이바라의 연구도 마침 모두 끝났다. 쿠도 신이치로서, 조직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는 요구를 수용해, 실패를 거듭한 끝에 해독제를 만들었다. 단편적인 단서를 긁어모아 완벽하게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든 최종본이었다. 이걸 먹으면, 이제 작아진 몸과 안녕이다. 후련한 감정이 드는 한편, 섭섭함이 안을 묵직하게 채웠다. 코난으로 쌓아왔던 관계가 모두 사라진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들과 모두 인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그와는……. 아니,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빠르게 상념을 털어냈다. 실없는 생각이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 주춤했던 코난은 해독제를 삼켰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때다.

 

 

 

후루야와 다시 만난 건 신이치로 돌아가고 일주일이 흐른 뒤였다. 어린아이로 지내느라 원래 모습에 적응하는 데 걸린 시간이기도 했다. 재회는 갑작스러웠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하고 느닷없이 맞닥뜨렸다. 머릿속이 순간 새하얗게 변하고,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저답지 않은 반응이란 걸 안다. 어색하게 웃으며 딱딱하게 그를 반기는 행동은 누가 봐도 의심스러울 테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몸이 그대로 따라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치미는 자괴감을 가까스로 붙잡는다. 후루야는 잠시 놀란 듯 신이치를 응시하다, 곧 성큼 다가와 그의 두 손을 붙잡았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꽃이 개화하듯 환히 켜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신이치 군. 금방이라도 꿀이 뚝뚝 흐를 만큼 달콤한 음색으로 속삭인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 몸은 괜찮아?”

“…네. 아무, 아니, 후루야 씨는……”

“나야 물론 괜찮지.”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후루야의 두 눈이 푸르게 일렁이는 눈동자를 똑바로 향한다. 신이치 군.

 

 

“…나는 네가, ……네가 궁금해. 너에 대해 알고 싶어.”

“…….”

“부담을 주려고 한 말은 아니야. 그냥…말해주고 싶었어.”

 

 

입매가 잔잔한 호선을 그린다. 신이치는 입술을 꼭 씹었다. 금방이라도 정제되지 않은 생각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후루야는 눈을 마주하자마자 알아챘을 것이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말을 했던 건, 아마 확신을 심어주되,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일 테고. 어른이구나. 그런 감상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싶었다.

 

 

 

 

 

연애는 연애고, 일은 일이다. 후루야는 답답하게 죄어오는 타이를 늘리며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보스와 간부급 조직원들이 모두 모이는 일이다. 조직에 대한 단서를 꽤 얻은 만큼 조직도 진행하던 연구가 막바지를 보였다. 이번 거래가 즉 마지막 열쇠니 무겁게 자리를 지키던 보스까지 움직이는 건 당연했다. 접선 장소는 H호텔 최상층 스위트룸. 일반인은 모두 내보내 호텔을 봉쇄하고 내부 팀과 외부 팀으로 나누어 포위한다.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이 협력한 사상 최대 규모의 작전이었다. 그만큼 위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에, 신이치는 유독 고집을 부렸다.

 

 

“제가 갈게요.”

 

 

최상층에 투입할 인원을 선별하던 중, 잠자코 앉아있던 신이치가 불쑥 끼어들었다. 회의실이 삽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가 아무리 조직의 피해자며, 정의감이 투철한 탐정이라고 해도 아직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후루야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카이마저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제가 가고 싶어요. 흔들림 없이 단단한 눈동자가 어른들을 똑바로 직시한다. 아아. 작게 침음을 흘렸다. 제가 반했던 그 눈이, 지금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모한 선택이었다. 그는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요원도 아니었고 제 한 몸을 건사할 정도로 체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혹시 총격전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눈먼 총알을 맞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후루야는 약해진 마음을 애써 가다듬었다. 안 될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무리라고 운을 막 떼려던 참에, 무리 중 누군가가 그와 베르무트의 관계에 대해 거론했다. 그녀를 쫓는 요원들 사이에 암암리에 퍼져 있는 사실이긴 했다. 한 명이 물꼬를 트자, 증언이 차례로 이어진다. 하. 후루야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방패막이로 데려가자는 말과 다른 게 뭐냔 말이다. 중재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자, 신이치의 입이 다시 한 번 열린다. 맞아요, 베르무트는 저를 죽이지 않을 거예요.

 

 

 

 

 

후루야 씨!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후루야의 뒤를 따르며 급하게 옷깃을 잡아 불러세운다. 회의가 파하고 잔뜩 굳은 얼굴로 나간 후루야가 신경 쓰여 서둘러 달려온 눈치였다. 후루야 씨. 당당하고 의연한 목소리가 발을 붙잡는다.

 

 

“다녀와서 말해줄 게 있어요.”

“…….”

“제 걱정은 마세요. 그러니까, ……후루야 씨도 조심하세요.”

 

 

등만 보이는 태도가 야속할 법도 한데, 신이치는 전하려던 말을 전부 마치곤 지체없이 돌아섰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뒷모습이 망막에 비친다. 그게 후루야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 후회하게 될,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게 느낀 건 무장한 요원 하나가 달려와, 와보셔야 할 것 같다는 귀엣말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호텔 설계도를 펼쳐놓고 작전을 지시하던 후루야를 호출할 정도면 보통 예사롭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소리다. 불쑥 고개를 치켜드는 불안감을 힘겹게 내리눌렀다. 이미 호텔에는 내부 팀이 투입되어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면 내부 팀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일 확률이 컸다. 제발. 이가 빠득 갈렸다. 하필 거센 장마라 시야 확보도 힘들었다. 후루야는 폭풍우로 뿌옇게 흐린 길을 헤치고 나가 초조하게 호텔을 올려다보던 카자미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야.”

“저, 그게… 아무래도…”

 

 

그 때였다.

 

 

 

쾅.

 

 

 

불길한 폭발음이 들렸다. 설마. 경악에 찬 비명소리와 다급히 몰려드는 요원들의 웅성거림이 먹먹하게 울린다. 아냐, 아닐 거야. 눈앞을 적시는 빗방울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아. 일순 눈앞이 까매졌다. 폭발의 근원은 최상층이었다. 최상층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뒤늦게 정보가 샜다는 걸 눈치채고……잡힐 위기……자살폭탄으로 사용한 거 같……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망한 걸로 파악…… 주위의 소란이 점점 멀어진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동떨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세상에 저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빗물에 뒤섞여 그의 뒷모습이 일렁이다 사라진다. 신이치. 후루야는 결국 눈을 감았다.

 

 

 

 

 

“보스로 추정되는 시신이 나왔습니다.”

“…….”

“훼손이 심한 시신을 제외한 내부 팀의 신원은 모두 확인됐고, 나머지는 아직입니다. ……저, 그런데…”

“뭔데.”

 

 

…두 명이 빈답니다. 조심스레 이어지는 말에 후루야가 미간을 슬쩍 좁혔다. 카자미는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폭발이 있고 일주일. 후루야의 상태는 극도로 예민했다. 계속된 철야에 눈 밑이 짙었고 튀어나오는 대답이 신랄했다. 담담해 보이는듯해 안심하던 사람들도 바짝 날이 서있는 모습에 우려를 표할 정도였다. 쿠도 신이치.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처음, 차분했던 것도 그가 살아있다고 믿어서가 아닐까. 솔직한 생각이 그랬다. 아직까지 그의 사망이 확인된 바는 없다. 신원증명을 하지 못한 시체가 몇 구 있으니 그쪽에 속해있거나, 어쩌면 살아있을 수도 있겠지. 살아있다는 걸 알린 적이 없으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머릿속으로 여러 가설을 세워보던 카자미는 모든 보고를 마치고 가벼운 묵례를 했다. 마찬가지로 잠시 상념에 젖어있던 후루야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심경이 복잡할 테다. 나가는 순간까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

 

 

문이 닫히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적막에 잠긴다. 들리는 거라곤 세찬 빗소리뿐이다. 장마가 쉬지 않고 내린 지 벌써 일주일째다. 그 사건이 있던 날을 시작해 현장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내내 쉴 틈 없이 휘몰아쳤다. 마치 제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그의 뒷모습이 눈앞에 선명하다. 가지 말라고 붙잡아볼걸. 아니, 적어도 얼굴을 마주 보기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였다. 뒷모습이 생생할수록 그의 얼굴은 흐릿해진다. 애꿎은 입술만 짓씹는다. 후루야도 알고 있었다. 살아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건……. 그래도 카자미가 남겼던 말이 있었다. 분명 두 명이 빈다고 했다. 사건에 관련해서는 감이 좋은 아이니 뭔가 이상하단 걸 느끼고 피했을 수도 있다. 생사를 알리지 않는 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고. 그래, 그랬을 것이다. 최악의 가정은 모두 지워내고 희망적인 가설만을 늘어놓는다. 후루야는 시커먼 창밖을 내다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창 너머로 커다란 나무가 드센 바람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흔들렸다.

 

 

 

한 달이 지났다. 연락이 없었다. 후루야는 포기하지 않았다.

 

세 달이 지났다. 훼손이 심한 시신을 제외한 모든 시신의 신원을 확인했다. 신이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연락은 없었다. 후루야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섯 달이 지났다. 주축을 잃은 조직은 빠르게 무너졌다. 시시한 결말이었다. 연락은 없었다. 후루야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났다. 조직이 와해되었다. 여전히 연락은 없었다. 후루야는 비 오는 날이면 악몽을 꿨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년이 지났다. 조직과 관련된 모든 일이 정리됐다. 여전히 연락은 없었다. 후루야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삼 년이, 사 년이, 오 년이 지났다. 연락은 여전히 없다. 후루야는……여전히 그를 기다리지만, 더 이상의 희망은 품고 있지 않았다. 이미 버석하게 마른 속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다만 장마철, 거친 비가 내릴 즈음엔 항상 손을 내밀어 빗방울에 손을 담갔다. 비와 함께 사라졌으니, 이렇게라도 닿고 싶다는 퍽 애절한 이유에서였다. 아마 그는 신이치를 놓아줄 수 있게 될 때까지 빗속에서 영원히 멈춰있을 터였다.

 

 

“……후루야 씨.”

 

 

신이치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는 말이다.

 

 

 

후루야는 제가 꿈을 꾸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희망은 작아졌고 고독은 몸집을 불렸다. 기다린다, 고 해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올 수 없을 거라 단언했다. 그만둬야 할까 싶었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차마 그만둘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5년 전과 다름없이 의연하고 찬란했다. 간절하고, 또 간절했던 모습에 후루야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신이치가 당황한 표정으로 제 곁에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의식할 새도 없이 그를 껴안았다. 들고 있던 우산이 떨어지고, 두 몸이 조용히 젖어들어 간다. ……기다렸어. 낮게 속삭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던 신이치도 그리웠던 너른 품에 몸을 기댔다. …저도요.

 

 

“의식불명이었대요. 베르무트와 따로 대화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폭탄이 터져서……. 그동안 베르무트가 돌봐주고 있던 모양이더라소요. 부모님께는 미리 말씀드리고요.……걱정했어요?”

“……엄청.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말했잖아요. 다녀와서 말해줄 게 있다고.”

 

 

좋아해요, 후루야 씨. 늦어서 미안해요.

 

 

 

아. 후루야는 제 품에 안긴 작은 온기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뺨을 적시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길을 지워내며 듣는이 없던 고백을 다시 입안에 품는다. 고마워, 신이치. 나도 좋아해. 정말, 정말 좋아해. 사랑하고 있어……. 장마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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